엄마가 치매에다 낙상사고로 고관절, 오른손목 골절까지 되셔서
하루종일 옆에 붙어 간병을 하고있다.
연차라는 연차는 엄마 병원 따라다니느라 이미 다 썼고...
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주1~2회만 출근, 나머지는 집에서 재택근무하며
엄마 곁에서 일하고 있다.
간병받는 환자가 차라리 남이었으면 덜 힘들었을거다.
내 엄마가, 나의 어머니가 늙고 병들어가는 과정을 보는게
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든다.
차라리 다른 사람이 걷지 못해 내가 부축을 하는 상황이었다면,
차라리 다른 사람이 대소변을 가리지못해 기저귀를 갈고 옷 세탁을 하는 상황이었다면,
그랬다면 그냥 무념무상으로 육체적인 노동만 할 수 있을텐데...
나의 엄마다 보니 정신적인 노동까지 더해져
매일 엄마를 대할 때마다 초인적인 힘이 필요하다.
왜 이렇게 속상하게 하냐고 소리지르고 싶은
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냐고 펑펑 울고 싶은
울컥 토하듯 나오는 그 모든 마음을 꾸역꾸역 삼키고
상냥하게, 담담하게 엄마를 대해야한다.
나에겐 오빠, 언니가 있다.
두 명 모두 오래전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산다.
특히 언니는 일본으로 시집을 간데다
코로나때문에 아빠 장례식에도 오지 못했다.
본인들이 부모님의 육체적, 경제적 간병을 하지 못하는데에 대한 미안함을 전달하길래
그 때엔 또 무슨 자애로움이 있었는지, 무슨 여유가 있었던 건지
오빠 언니는 조카들 키우잖아
난 애가 없으니 대신 아빠 엄마 키운다고 생각하지 뭐
라고 대답했다.
난 그들에게 얼마나 호구스럽고 다행이고 만만한 동생일까.
독박육아?
독박간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.
내가 키워내서 장성하는, 자라나는 자녀를 돌보는 것과
그저 점점 나빠지기만 하고 결과가 죽음인것이 뻔한 부모를 돌보는 것.
둘 중 어떤게 나아보이냐는 질문을 오빠, 언니에게 하지 못한 병신같은 나.
엄마의 치매는 점점 진행되고 있다.
날짜, 계절, 시간감각은 없어진지 오래되었고
어떤 문제가 주어졌을때 스스로 해결을 할 수가 없다.
밥도 내가 차려줘야 드실 수 있고
심지어 내가 이 반찬도 먹어봐, 저 반찬도 먹어봐
말 하기전까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반찬만 드신다.
옷이 어디있는줄도, 심지어 왜 갈아입어야 하는지도 모른다.
화장실도 가라고 등을 떠밀어야 간다.
내가 화장실 가라는 말을 안하면 바지와 이불에 소변이 다 스며드실때까지
화장실을 간다는 사고를 못하신다.
내가 없으면 먹고, 싸는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.
주변에서 효녀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.
임종 직전의 아빠 손발을 닦고 기저귀를 처리하던것도 나였고
아빠가 떠난 후 혼자 남겨진 엄마마저
이젠 자연스레 나에게 주어졌다.
일가 친척, 친구, 직장동료, 병원직원들 등등...
수없이 나에게 해주던 말.
'효녀'
난 그게 칭찬인 줄 알았지.
이렇게 큰 족쇄와 손쉬운 지불일줄은 몰랐지.
이 얼마나 값싼 노동력의 댓가인가.
나의 신체적, 정신적, 경제적 노동을 모두 바친 댓가로
그들은 '효녀' 라는 말 한마디만 지불하면 된다.
난 효녀라는 말이 정말 싫다.
효녀라는 겉보기만 좋고 의롭고 착한 그런 단어따위로는
나의 생활을 퉁쳐 설명 할 수 없다.
난 그냥
'엄마의 엄마'가 되어버렸다.
'모니터로 수다떨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Merry Christmas. (0) | 2021.12.25 |
---|---|
다들 이렇게 삶이 힘든가? 정말로? (0) | 2021.11.27 |
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 (0) | 2021.11.25 |
많이 지쳤다 (0) | 2021.11.25 |
빗속에서도 춤춰라 (0) | 2018.09.11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