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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니터로 수다떨기

난 엄마의 엄마가 되버렸다

by 희까츄 2021. 12. 6.

 

엄마가 치매에다 낙상사고로 고관절, 오른손목 골절까지 되셔서

하루종일 옆에 붙어 간병을 하고있다.

 

연차라는 연차는 엄마 병원 따라다니느라 이미 다 썼고...

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주1~2회만 출근, 나머지는 집에서 재택근무하며

엄마 곁에서 일하고 있다.

 

간병받는 환자가 차라리 남이었으면 덜 힘들었을거다.

내 엄마가, 나의 어머니가 늙고 병들어가는 과정을 보는게

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든다.

차라리 다른 사람이 걷지 못해 내가 부축을 하는 상황이었다면,

차라리 다른 사람이 대소변을 가리지못해 기저귀를 갈고 옷 세탁을 하는 상황이었다면,

그랬다면 그냥 무념무상으로 육체적인 노동만 할 수 있을텐데...

나의 엄마다 보니 정신적인 노동까지 더해져 

매일 엄마를 대할 때마다 초인적인 힘이 필요하다.

 

왜 이렇게 속상하게 하냐고 소리지르고 싶은

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냐고 펑펑 울고 싶은

울컥 토하듯 나오는 그 모든 마음을 꾸역꾸역 삼키고

상냥하게, 담담하게 엄마를 대해야한다.

 


 

 

나에겐 오빠, 언니가 있다.

두 명 모두 오래전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산다.

특히 언니는 일본으로 시집을 간데다 

코로나때문에 아빠 장례식에도 오지 못했다.

 

본인들이 부모님의 육체적, 경제적 간병을 하지 못하는데에 대한 미안함을 전달하길래

그 때엔 또 무슨 자애로움이 있었는지, 무슨 여유가 있었던 건지

오빠 언니는 조카들 키우잖아

난 애가 없으니 대신 아빠 엄마 키운다고 생각하지 뭐

라고 대답했다.

난 그들에게 얼마나 호구스럽고 다행이고 만만한 동생일까.

 

독박육아?

독박간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.

내가 키워내서 장성하는, 자라나는 자녀를 돌보는 것과

그저 점점 나빠지기만 하고 결과가 죽음인것이 뻔한 부모를 돌보는 것.

 

둘 중 어떤게 나아보이냐는 질문을 오빠, 언니에게 하지 못한 병신같은 나.

 


 

엄마의 치매는 점점 진행되고 있다.

날짜, 계절, 시간감각은 없어진지 오래되었고

어떤 문제가 주어졌을때 스스로 해결을 할 수가 없다.

밥도 내가 차려줘야 드실 수 있고

심지어 내가 이 반찬도 먹어봐, 저 반찬도 먹어봐 

말 하기전까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반찬만 드신다.

옷이 어디있는줄도, 심지어 왜 갈아입어야 하는지도 모른다.

화장실도 가라고 등을 떠밀어야 간다.

내가 화장실 가라는 말을 안하면 바지와 이불에 소변이 다 스며드실때까지

화장실을 간다는 사고를 못하신다.

내가 없으면 먹고, 싸는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.

 


 

주변에서 효녀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.

임종 직전의 아빠 손발을 닦고 기저귀를 처리하던것도 나였고

아빠가 떠난 후 혼자 남겨진 엄마마저

이젠 자연스레 나에게 주어졌다.

 

일가 친척, 친구, 직장동료, 병원직원들 등등...

수없이 나에게 해주던 말.

'효녀'

난 그게 칭찬인 줄 알았지.

이렇게 큰 족쇄와 손쉬운 지불일줄은 몰랐지.

 

이 얼마나 값싼 노동력의 댓가인가.

나의 신체적, 정신적, 경제적 노동을 모두 바친 댓가로

그들은 '효녀' 라는 말 한마디만 지불하면 된다.

난 효녀라는 말이 정말 싫다.

 


 

효녀라는 겉보기만 좋고 의롭고 착한 그런 단어따위로는

나의 생활을 퉁쳐 설명 할 수 없다.

 

난 그냥

'엄마의 엄마'가 되어버렸다.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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